<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끝> 벌거숭이 스님, 얼어 죽게 된 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②

붓다의 정원

벌거숭이 스님, 얼어 죽게 된 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②

진영갈매기 2021. 1. 3. 08:45

 

 

순천 낙안읍성

 

 

네 이놈! 잘 걸렸다 싶었던지?’ 절집 대중들이 떼를 모아 정수 스님을 찾아왔다.

들은 척도 안 하자 주지 스님과 방장 스님을 찾아가서는 천엄사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저 못된 파계승을 쫓아내라고 온갖 난리를 피웠다.

 

너희가 아무리 그래 봐라. 내가 꼼짝을 하는가.’

대중 스님들의 성화에도 불승 정수는 끄떡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먹이고 닦이고 입히고 옆에서 같이 잤다.

갓난아이는 제 엄마가 먹이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연을 캤다.

 

너희들은 어떤 사이냐?”

정수 스님이 묻자 아이 엄마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 스님. 저희는 남매사이입니다. 저는 외순이라 하고 이제 열여섯이 막 되었습니다. 제 동생은 막둥이라 부르고 열 살입니다.”

 

 

왜구들 

 

어떤 연유로 그 골짜기에 있게 되었느냐? 부모님은 안 계시느냐?”

부모님은 난리 통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난리 통에? 무슨 난리?”

, 스님. 왜구들이 우리 마을에 쳐들어와서 약탈하는 중에 반항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순천 낙안면

 

그랬구나. 나쁜 놈들. 그래, 고향이 어딘데?”

전라도 낙주(洛州, 현재의 순천시 낙안면) 입니다.”

그렇구나. 멀리서도 왔네

동냥질로 연명했습니다. 전쟁에 가뭄에 사람들이 모두 배를 곯고 있어서 우리에게 나누어 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어떡하고?”

갑자기 외순이 입을 닫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막둥이가 대신 입을 열었다.

아이 아버지는 없어요.”

없어?”

왜놈 새낀데 뭐.”

왜놈?”

 

 

장독대

 

엄마하고 아버지는 왜구에게 그렇게 되고, 너무 무서워서 누나하고 장독 안에 숨어 있는데,……

숨어 있는데?”

왜놈들이 장독을 하나하나 다 열어 보더라고요. 그래서 누나가 저렇게 됐어요.”

 

정수 스님이 외순의 손을 잡고 토닥거렸다.

나무 관세음보살.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 아이는 불보살이 분명히 도와주실 게다.”

외순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경주 기림사 벽화

 

외순이 부러 쾌활한 어조를 띄며 화제를 바꿨다.

동생이 꾀를 냈습니다. 둘이 같이 다니면 굶어 죽을 테니 자기가 절에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나 혼자서는 어떻게 하든지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형편이 풀리면 찾으러 오라고.”

아주 좋은 생각을 했구나.”

 

막둥이의 말이 그럴듯했습니다. 이왕이면 큰 곳으로 가자고 해서 경주에 있는 절을 목적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바람도 불고 눈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눈보라

 

그러면서 남매는 울었다.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정수 스님도 같이 껴안고 울었다.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아이 엄마 외순이 건강을 회복하는 사이 정수 스님은 병으로 자식을 잃고 외롭게 부부만 사는 신도 집에 찾아갔다. 가서 외순과 막둥을 자식으로 맡기는 일을 의논하니 부부가 너무 좋아해서 쉽게 매듭이 지어졌다.

 

일이 제대로 정리되자 정수 스님은 가사 장삼을 수하고 주지 스님을 찾아갔다.

가서는 큰 스님께 절하면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참회했다.

스님, 계율을 어겼습니다. 대중공사를 개최해서 저의 죄를 책벌해주십시오. 사중(寺中)에서 내리는 대로 징벌을 받겠습니다.”

주지 스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해야겠지요.”

 

 

천마도

 

대중 스님들이 모두 모이고 주지 스님이 공사 시작을 알리자, 불승 정수는 대중들 가운데 나아가 크게 절하고 죄를 참회했다.

소승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벌거숭이가 되어 중생들 사이를 다녔으니 그런 큰 죄가 없습니다. 이제 그 죄를 참회하고 벌을 받고자 합니다. 대중의 처분대로 하겠습니다.”

 

정수 스님의 참회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수런대는 소리가 나더니 목청을 높여 스님들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주지 스님 들으라고 일부러 목청을 크게 높이는 승려도 있었다.

 

스님이 여자 앞에서 옷을 활딱 벗으면 어떻게 해?”

세간 여자를 스님 방에다 재우는 것은 어떻고?”

아이도 받았다고 하잖아. 세상에 그런 일을 하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노?”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자기 방에다 재웠겠지.”

절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원주스님이 대중의 뜻을 모아 의견을 피력했다.

주지 스님! 세상을 떠나 도를 닦는 출가자가 아녀자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자기 방에다 여자를 재우고, 여자의 출산을 돕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은 그 경위가 어떠하든 간에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원주스님이 말을 하는 중에 그 말을 끊고 주지 스님이 목청을 높였다.

정수 스님이 이번에 한 일은 제가 보기에는 지난 몇 년간 천엄사 스님들이 한 일 중에서 제일 잘한 일 같은데요.”

 

정수 스님은 주지 스님 쳐다보기가 계면쩍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스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대중 스님들의 생각이 제일 중요합니다. 계율을 어겼으니 소승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 스님이 제 의견을 피력하느라고 핏대를 높이고 있는데, 마른하늘에 번개가 번쩍하고 치더니 한겨울인데도 소나기가 한차례 심하게 내렸다.

 

 

무지개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반원을 그리며 섰는데, 그 위로 아미타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엄사 승려들은 들어라. 정수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이다. 그대들은 마음에 상()이 너무 많아 보살을 보고도 마구니라 여기는구나.”

그 말을 들은 천엄사 승려들은 벌벌 떨었다.

 

 

관세음보살

 

다음 날이 되자 아미타부처님과 정수 스님 이야기가 서라벌 장안에 쫙 퍼졌다.

마침내 애장왕의 귀에까지 들어가니, 이에 섭정 김언승이 왕의 명을 받아 정수 스님을 궁내로 맞아 국사로 봉하려고 나섰다.

 

 

신라 천년의 미소

 

가마로 모시려 하는데, 정수 스님은 한사코 걸어가셨다.

이유인즉슨 석가모니 부처님도 평생을 맨발로 다니셨는데 제자 되는 사람이 어떻게 가마를 타고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섭정 김언승도 정수 스님을 따라 평생 처음으로 가마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 참고문헌

<삼국유사>2, 7 감통편, ‘정수사가 얼어 죽게 된 여자를 구하다(正秀師救氷女)’

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재호 옮김, 일연 지음, <삼국유사 1>(솔출판사, 2008)

 

링크 부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6Oer7r5t6Kb1gmuR9jaQzA

방랑자 블로그 https://bonghw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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