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신라 시대였다. 영암에서 나주로 가는 길목, 영암천 옆에 작은 주막이 하나 있었다. 그 주막에는 나이 든 주모를 도와 허드렛일을 하는 덕진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일찍 부모를 여윈 오갈 데 없는 고아였다. 영암천은 서해안에서 바닷길로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끝 지점으로, 목포에서 들어오는 배가 마지막으로 정박하는 나루터가 있는 곳이다. 영암천은 폭이 백자 남짓으로 나무다리를 건너야 나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닷물이 차오를 때는 나무다리를 건너가기가 위험했으며, 물살에 다리가 무너져 내린 경우가 허다했다. 이럴 때면 영암천 상류 누릿재까지 한나절을 돌아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어느 해 사월 초파일이었다. 주모의 허락을 받은 덕진은 첫새벽에 일어나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