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신라 시대였다.
영암에서 나주로 가는 길목, 영암천 옆에 작은 주막이 하나 있었다.
그 주막에는 나이 든 주모를 도와 허드렛일을 하는 덕진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일찍 부모를 여윈 오갈 데 없는 고아였다.
영암천은 서해안에서 바닷길로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끝 지점으로,
목포에서 들어오는 배가 마지막으로 정박하는 나루터가 있는 곳이다.
영암천은 폭이 백자 남짓으로 나무다리를 건너야 나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닷물이 차오를 때는 나무다리를 건너가기가 위험했으며,
물살에 다리가 무너져 내린 경우가 허다했다.
이럴 때면 영암천 상류 누릿재까지 한나절을 돌아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어느 해 사월 초파일이었다.
주모의 허락을 받은 덕진은 첫새벽에 일어나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이 없을 때, 부처님 전에 부모님 명복을 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지만, 어린아이의 걸음,
절집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
도량(道場) 가득히 사람이 넘쳐나 발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덕진은 다행하게도 여리고 작은 몸매를 가지고 있어,
구석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부처님 전에 삼배하고,
낭랑하게 법을 설파하는 주지 스님 앞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여러 시주님네들, 무엇보다도 평소에 세상의 복전(福田)이 되어야 합니다. 복전이 무엇이냐? 복의 밭을 말합니다. 복의 밭이 무엇이냐? 삼보(三寶)를 공양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농부가 밭에서 수확하는 것과 같이 한 냥을 베풀면 백 냥의 복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대가를 바라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 가운데 최고의 보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했습니다.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베풀고도 너를 위하여 내가 베풀었다는 생각이 없는 보시가 진정한 보시입니다. 왼손이 베풀고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보시야말로 진정한 보시입니다. 여러분이 남모르게 한 냥의 보시를 이 세상에서 베풀면 그 복덕으로 가깝게는 이승에서 그 보답을 받을 것이요, 멀게는 저승의 곳간에 백 냥의 재물이 쌓일 것입니다. 저승의 곳간에 있는 그 재물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모님, 그리고 여러분의 아들딸과 손자 손녀의 삶을 여러 생에 걸쳐서 행복하고 윤택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주머니, 술 한 잔 주시오.”
주막으로 나그네가 들어오자 주모가 반갑게 맞았다.
“예에, 어서 오시오, 옷이 다 젖었구먼요.무슨 비님이 이렇게도 많이 오시는지 모르겠네.”
주막에 들어온 사람은 술 한 잔을 들이켜고는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에야 되돌아오더니.
“징검다리를 건너갈 수 있으려나 싶어 나가 봤더니 도저히 안 되겠구먼,큰일 났네. 어떻게 해야 하나.”
나그네의 말에 주모가 덧붙였다.
“함부로 건너가시다가는 물귀신 됩니다.”
나그네는 바쁘다고 해대며 초조하게 연방 술잔을 비웠다.
주모가 말했다.
“이곳에 다리가 놓이면 좋겠지요.”
“주모는 그것을 말이라고 하시오. 좋다 뿐이겠습니까?”
“다리를 놓는 데 얼마나 들까요?”
“왜? 주모가 다리를 놔주려고?”
“에이 무슨 말씀,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냥 한번 물어본 것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삼백 냥은 족히 들 것입니다.”
“아이고, 엄청난 돈이네요.”
주모와 나그네의 말을 귀 곁으로 들으며
잔심부름하고 있던 덕진은
삼백 냥이라는 말에 귀가 뻔적 뜨였다.
“삼백 냥! 삼백 냥!”
국솥 앞에서 국을 저으며 혼잣말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초파일에 절에서 들었던 주지 스님의 법문을 생각했다.
“옳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다리를 놓으면 되겠구나. 그렇지만 내게는 그만한 돈이 없는데 어쩌지. 아니야, 푼푼이 모으면 언젠가는 놓을 수도 있을 거야.”
덕진은 그날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덕진은 빈 항아리를 마련하고,
일이 끝나면 심부름하면서 한푼 두푼 받은 돈을 그 항아리에 담았다.
동전이 바닥을 채우는데만 꼬박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제 그 돈이 모일까 하고 까마득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리가 생기면 통행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변을 당하는 사람도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지곤 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주모가 세상을 뜨자, 덕진이 그 주막을 이어받았다.
10여 년의 세월이 또 무심하게 흐르고,
그녀는 흐르는 세월만큼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동전은 예전 심부름꾼 노릇 할 때보다는 빠르게 늘었지만,
아직 반의반의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내 죽기 전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덕진 여인은 배고픈 사람에게 양껏 음식을 퍼주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밥을 주며,
잘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아랫목을 내주며, 아픈 사람은 치료해주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고, 돈이 없는 나그네에게 노잣돈을 그냥 주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는데,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할꼬?
동네 노름꾼 하나가 덕진의 주막을 노렸다.
몇십 년 주막을 경영했으니 모아놓은 돈이 많으리라 생각 한 것이다.
호시탐탐 주막을 노리다가,
어느 날 저녁 뒷마당에 파놓은 항아리에 돈을 넣는 덕진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 죽이고는 돈을 가지고는 도망쳐버렸다.
며칠이 지났다.
그놈이 노름판에서 죽자꾸나 하고 돈을 탕진하는 사이
상주도 없는 초라한 상여 한 채가 동구 밖으로 나갔다.
그 무렵 영암 고을 원님이 자다가 갑자기 죽었다.
그런데 저승에서 야단이 났다. 저승사자가 실수로 사람을 잘못 데려온 것이었다.
염라대왕은 원님에게 아직 죽을 때가 아니지만, 옛말에 ‘사람은 인정(人情)에 막히고 귀신은 경문(經文)에 막힌다’고 했으니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고, 저승을 통과하는 비용으로 삼백 냥만 내놓고 이승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원님이 말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 저승에는 덕을 쌓은 만큼 채워지는 곳간이 있으니 그곳에서 가져오면 될 것이다.”
원님이 저승사자와 함께 자신의 저승 곳간에 가보았으나,
그곳에는 달랑 볏짚 한 단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원님이 살아생전 남을 위해 건네준 유일한 보시가 볏짚 한 단 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생전 행동에 대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한 원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자 저승사자가 슬쩍 옆구리를 찔렀다.
원님이 쳐다보자 저승사자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지은 죄도 있고 하니, 방법을 가르쳐 주리다.”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 중에 덕진이라는 여인이 최근에 살인강도를 당해 죽어서 저승으로 왔소이다. 그 여자분 곳간에 있는 돈 삼백 냥을 빌려서 내고 나중에 갚으면 될 겁니다.”
가서 보니 덕진 여인의 곳간에는,
평소 남모르게 베푼 덕이 많아서, 곳간 가득 수천 냥의 재물이 쌓여 있었다.
원님은 그곳에서 삼백 냥을 빌려 염라대왕에게 주고 이승으로 환생했다.
죽은 줄 알았던 원님이 살아나자 장사 지내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원님은 깨어나자마자 최근에 죽은 이웃 동네 덕진 여인에 관해서 물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착한 행실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찾아온 거지를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없으며,
나그네들에게는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노잣돈을 그냥 나누어 준다고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강도당한 일을 자기 일처럼 분개하면서
그 망할 놈이 어떤 작자인지 짐작이 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그날 밤이었다.
원님은 소복을 입고 나타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십 리쯤 가는 덕진리에 살았던 덕진이라는 여인이옵니다.”
“아! 그런가. 마침 잘 찾아왔네. 내가 자네에게 갚을 돈 삼백 냥이 있는데. 어떻게 돌려줄까?”
그러자 여인이 말하였다.
“살아생전 제 소원은 돌아가신 양친 부모님을 위한 공덕을 짓기 위하여, 영암과 덕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다리를 놓기 위해 평생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강도를 만나 이승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그 노름꾼 놈을 잡아 처벌해주시고 다음으로 다리를 놓고자 한 제 평생의 서원을 들어주십시오. 그러면 원님의 빚이 모두 탕감될 것입니다.”
말을 다 마친 여인은 큰절을 하고 물러났다.
꿈에서 깬 원님은 즉시 덕진 여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우선 형방에게 하명하여 살인사건 수사를 진행토록 하였다.
형방은 노름판을 급습하여 강도를 잡았다.
놈은 순순히 살인을 자백했고, 원은 법대로 처리했다.
그런 다음 자기 고향의 전답을 처분하여 삼백 냥을 만든 다음
영암과 덕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여인의 갸륵한 뜻을 살려 다리의 이름을 덕진교(德津橋)라 부르게 하였다.
영암 고을 원님은 평생 덕진 여인을
자기 부모님처럼 생각하여
기일이 되면 제사를 지내고
사월 초파일이 되면 도갑사에 등을 달았으며
마을 백성을 다스릴 때마다
이럴 때 덕진 여인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자기 삶의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용어 해설>
-첫새벽 : 날이 새기 시작하는 새벽
-야단법석(野壇法席) :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
-복전(福田) : 복을 거두는 밭이라는 뜻. 삼보(三寶)를 공양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면 복이 생긴다고 한다.
-삼보(三寶) : 불법승(佛法僧)을 삼보라고 한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보시는 대승불교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무주상보시는 《금강경》에서 천명된 것으로서,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이다. 다시 말해서 베풀었다는 생각 없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말한다.
- 사람은 인정(人情)에 막히고 귀신은 경문(經文)에 막힌다 : 사람은 인정이 있어서 사정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참고문헌 및 자료>
-영암군청 홈페이지(https://www.yeongam.go.kr/)
-영암문화원홈페이지(http://www.yaculture.org)
-지역N문화 <덕진 아씨의 공덕으로 만들어진 덕진다리>
-영암신문(http://www.yasinmoon.com) 2017.06.12.
-김홍도의 주막 등 그림 몇 점
-PIXTA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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