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끝> 얼굴상은 골상만 못하고 골상은 마음상만 못하다.

한겨울의 아랫목 같은 옛이야기

얼굴상은 골상만 못하고 골상은 마음상만 못하다.

진영갈매기 2021. 5. 3. 17:21

관상

 

 

북송(北宋) 시대 유명한 재상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젊었을 때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당시 수도 개봉(開封, kaifeng)에 용하기로 소문난 유명한 관상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 관상가는 사람이 대문으로 들어올 것 같으면, 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샛문 사이로 관상을 다 보았다.

들어오는 사람이 재상이 될 관상이면 마당까지 나가서 정중히 맞아들이고,

고을 원님쯤 될 관상 같으면 방문을 열고 섬돌 아래까지 나가서 맞아들이며,

진사 벼슬쯤 할 관상 같으면 문을 열고 그 사람을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그 정도도 못 할 사람 같으면 아예 문도 열어보지 않고 방으로 알아서 들어오라고 했다.

 

 

북송의 수도, 개봉

 

범중엄이 젊어서 아직 벼슬을 하기 전이었다.

장래 운수가 궁금해서 관상을 보러 갔는데, 샛문으로 범중엄을 본 관상가가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물었다.

내가 후일에 이 나라의 재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관상가는 한참 동안 공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또 아래위로 쭉 훑어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글쎄올시다. 소인이 본 상격(相格)으로는 재상이 되지 못하겠습니다. 벼슬할 생각은 아예 안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크게 실망한 공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냥 나왔다.

며칠 끙끙 앓다가 공이 관상가를 다시 찾아가 물었다.

나보고 재상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의원(醫員)은 될 수 있을까요?”

그러자 관상가가 정색하고 범문공을 힐난했다.

며칠 전 당신이 와서 재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물을 때는 뜻이 높더니, 어찌해서 금방 뜻을 낮추어 의원이 될 수 있는가를 묻소이까?.”

 

중국 최고의 명재상, 범중엄

 

그러자 범중엄이 대답했다.

나는 원래 어떻게 해서든지 온 천하의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 올리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재상이 되어 권세를 얻어야 내 뜻을 펴볼 수 있을 것 같기에 처음 여기 왔을 때 재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세간에서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라 할지라도 의원이 되어서 병고에 시달리는 불쌍한 백성을 돕고 싶어서 그럽니다.”

범중엄의 말을 들은 관상가는 갑자기 일어나서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여 공에게 읍()하면서 말했다.

내가 잘못 봤습니다. 공은 앞으로 분명히 송나라의 재상이 될 것입니다.”

공이 갑자기 어리둥절하여, 영문을 몰라서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얼마 전에는 재상이 못 되겠다고 말해놓고는, 인제 와서는 재상이 되겠다고 하니 사람을 이렇게 놀려도 되는 것입니까?”

 

 

관상의 원리

 

공의 말을 들은 관상가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관상은 세 가지를 보는데 첫째는 색상(色相, 얼굴상)이고, 둘째는 골상(骨相, 뼈상)이고, 셋째는 심상(心相, 마음상)입니다. 예전부터 색상(色相)은 불여골상(不如骨相)이요, 골상(骨相)은 불여심상(不如心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얼굴상은 골상만 못하고 골상은 마음상만 못합니다. 그러니 심상이 상 중에 제일가는 상입니다. 당신은 색상이나 골상이 시원치 않아 관상학적으로는 재상감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상, 즉 마음 쓰는 것을 보니 재상이 될 그릇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재상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강소성 소주

 

범중엄은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급 관리였는데 공()2세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난했던 범중엄은 세끼를 죽으로 연명하면서도 예천사라는 절에 들어가 승방(僧房)에 머물며 공부했고, 이후 북송 4대 서원 중 하나인 응천(應天) 서원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범중엄은 어려서부터 진중한 성격에 기품이 있었으며 행동거지가 바르고 절도가 있었다.

범중엄이 서원에서 공부할 때 일이다.

어느 날, 황제의 어가가 서원 인근을 지나게 되었다. 공부하던 학생들은 모두 일생에 한 번뿐인 황제의 행차를 구경하려고 호들갑을 떨었다.

 

 

범중엄이 공부하던 응천서원

 

오직 범중엄만이 자리를 지키며 책을 읽었다.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하자 그는 말했다.

조급하게 여길 것이 뭐 있느냐. 황제는 나중에 만나 뵈어도 늦지 않는다

집안이 가난한 범중엄은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다.

매일 죽만 먹었는데 이 죽도 굳은 후에 몇 조각으로 나누어 절인 생선 반찬과 같이 먹었다.

이를 보다 못한 부자 친구가 범중엄에게 질 좋은 고기와 신선한 생선을 가져다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 친구는 범중엄의 방에서 곰팡이가 핀 고기와 생선을 발견했다.

친구는 자신의 성의를 무시한 공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러자 범중엄이 말했다.

오해하지 말게. 내가 자네의 성의를 무시해서 고기와 생선을 안 먹은 것이 아니네. 이것을 먹고 난 후에 다시는 죽과 절인 생선을 먹을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라네.”

 

 

임금의 행차

 

범중엄은 26(1015)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해 관직의 길에 들어선 후 수십 년 동안 재상을 지냈다.

재상의 신분임에도 공은 평생 단 한 푼도 뇌물을 받거나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다. 그의 집은 다 허물어져 한겨울에는 추위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공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며 유능한 재상으로 국가를 살찌우고 백성의 평안을 위해 온 정열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쇠약해진 군대를 강군으로 키워 나라를 지켰고, 목숨을 걸고 황제에게 충언함으로써 간관(諫官)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뿐만 아니다. 국가 개혁의 틀을 마련했고 교육을 통한 계급과 신분의 철폐를 주장한 선각자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범중엄은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사대부의 전형이었다.

 

왕안석

 

비록 그의 개혁은 미완에 그쳤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훗날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이어받는다.

남송(南宋)의 대학자로 성리학을 확립한 주희(朱熹, 1130~1200)범중엄은 중국 역사 이래 최고의 일류급 인물이다라고 칭송했다.

사상은 달랐지만, 모택통과 장개석은 범중엄은 중국 역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었고 훌륭한 사상과 그 사상에 버금가는 인품을 갖춘 이다라고 존경을 표했다.

 

 

 

범중엄을 극찬한 모택동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좌천되어 임지로 가던 범중엄은 당시 동정호반(洞庭湖畔) 악양루(岳陽樓)에 현판을 써달라는 친구 등자경의 부탁을 받고 악양루를 찾았다.

그리고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여(先天下之優而優 後天下之樂而樂歟)’라는 천하의 명문을 남긴다.

이 글은, ‘(공직자는 근심되는 일은) 천하 사람들에 앞서서 근심하고, (즐거운 일은) 천하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 한 뒤에 즐거워하는 것이다.’는 내용이다.

 

 

악양루

 

이 구절은 벼슬 사는 관리와 공부하는 지식인의

자세와 책임감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글로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다.

하지만 공의 만년은 쓸쓸하다.

끊임없는 질시와 견제로 지방의 관리로 중국 변방을 떠도는 신세가 되어 부임지로 이동하던 중에 객사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때 그의 나이 64세였다. 가히 머리에 먹물들은 사대부의 삶이라 할 만하다.

 

<岳陽樓記>에서 발췌

嗟夫, 予嘗求古仁之心, 或異二者之爲何哉. 不以物喜, 不以己悲,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 微斯人, 吾誰與歸.

대저! 내가 일찍이 옛 성현의 마음가짐을 추구해보니,

간혹 이 두 가지 경우의 행위와 다른 것은 어째서인가?

외물 때문에 기뻐하지도 않고 자신의 처지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아서,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오로지 그 백성들을 걱정하였고

물러나서 초야에 머물면 오로지 한마음 자기의 임금을 근심한다.

이는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걱정한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겨를에 인생을 즐겨본단 말인가?

그들은 반드시 말할 것이다.

“(근심되는 일은) 천하 사람들에 앞서서 근심하고,

(즐거운 일은) 천하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 한 뒤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 이런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까!

 

 

범중엄, 악양루기

 

<용어 해설>

상격(相格) : 얼굴 됨됨이의 격

() :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 인사하는 예()의 하나이다.

승방(僧房) : 승려들이 침식하는 곳

 

<참고 문헌 및 출처>

김영진 엮음, 중국의 야담과 기담(큰방, 2014)

한무희·송정희 역, 고문진보(명지대 출판부, 1979)

박기종, 매일경제. 2017.06.06.

유성운, 중앙일보. 2018.02.10.

김덕권, 좋은 인상을 만드는 열 가지 방법, NF통신. 2020.10.21.

chosun.com. 2013.10.10.

MEDIA NEWS. 2017.20.10.

서울역사박물관

Lovepic

블로그 건방진방랑자. 2020.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