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영암 땅에 있는 월출산 기슭에는 관음사라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관음사 아랫마을에는 나무를 해 저자에 팔고 방아를 찧어서 품을 파는 가난한 떠꺼머리총각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총각의 이름은 병석이었습니다.
병석은 영리함하고는 거리가 먼데다가 심한 말더듬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새벽녘 우물가에서 처음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맑은 품성을 지녔습니다.
자기네들하고 같은 부류인 것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마을의 코흘리개들이 동무로 여겨 해맑은 목소리로 ‘형아, 형아’ 하고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병석 또한 아이들을 제 동기간 같이 좋아해서, 즐겨 업고 지고 메고 하면서 더듬더듬 혀 짧은 목소리로 같이 놀아주었습니다.
나무를 하러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병석은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관음사 앞을 지나다녔습니다.
병석은 예불 소리를 특히 좋아해서, 틈이 날 때마다 절집 도량 한쪽에 퍼질러 앉아서는, 스님의 염불 소리나 큰 북 두드리는 소라나 범종 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천지간에 어디 있으랴!’
들을 때마다 황홀하여 병석은 온몸이 떨렸습니다.
말 그대로 환장(換腸)!,
아래의 콩팥과 위의 염통이 서로 위치를 바꾸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나무를 한 짐 해서는 관음사 대웅전 앞에다 가져다 놓았습니다.
돈도 없고 초도 없고 쌀도 없으니 가진 것으로 정성을 표시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이해하시리라. 병석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대웅전 앞에다 나무 한 짐을 놓고 일어서는데 누군가가 웃고 있었습니다.
빡빡머리에다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정하게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병석이 꾸뻑 절을 하자 그 스님이 말했습니다.
“합장할 줄 모르느냐?”
“하합장이 무무엇입니까요?”
“따라가자. 내가 가르쳐줄게.”
그날 병석은 태어나서 처음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구경했습니다.
스님은 차를 한잔 끓여주었습니다.
그날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차라고 하는 놈을 맛보았습니다.
떫기만 한, 이것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합장하는 법’과 ‘합장하는 이유’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님이 관음사 주지 무상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시주는 이름을 무어라고 하는가?”
“기김병석이라고 합니다요.”
“그렇구나. 부모님은 다 계시고?”
“아아닙니다. 아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어머니만 계십니다.”
“그러면 네가 나무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느냐?”
“예, 나나무를 해서 자장터에 가져가서 파팔아서리 어머니하고 두둘이 삽니다요.”
“절집이 좋으냐?”
“예.”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
“그그냥 좋습니다. 저절에 오면 머머리가 하하얗게되면서 오오온몸이 덜덜덜 떨리고,……”
“……희유하구나. 부처님과 사랑에 빠지다니. 아주 오래된 인연인가 보구나.”
‘부처님과 사랑에 빠지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병석의 입에서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습니다.
“스스님이 되되고 시싶습니다요.”
“출가하고 싶다고?”
“추출가가 아니라 스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 출가가 아니라 스님이 되고 싶다 이 말이지?”
“예.”
“병석아! 내 말을 잘 들어라. 어머니는 너를 낳을 때, 서 말 석 되의 피를 흘렸다. 낳고 난 다음에는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 너를 키웠다. 알겠느냐?”
“예.”
“그러면 이제 내가 너에게 어머님의 열 가지 크신 은혜를 말해주마. 첫째, 배 안에서 열 달 동안 너를 길러낸 은혜가 있다. 둘째, 너를 낳으실 때 고통받았던 은혜가 있다. 셋째, 너를 먹이고 길러준 은혜가 있다. 넷째,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서 너를 키운 은혜가 있다. 다섯째, 오줌똥을 가려주신 은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여섯째,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너를 먹인 은혜가 있다. 일곱째, 생명을 걸고 너를 지켜주신 은혜가 있다. 여덟째, 너를 교육하여 사람답게 만든 은혜가 있다. 아홉째, 네가 길을 나서면 걱정하는 은혜가 있다. 열째, 끝까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은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그렇다. 그러니 자네가 어머니를 업고 월출산을 백번 천번을 오르고 내려서 가슴이 터져서 네 뼈가 드러나고 네 뼈가 닳아서 골수가 흐른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어머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 이 말은 내 입을 빌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알겠느냐?”
“예.”
“병석아, 네가 스님이 되면 늙은 어머니가 혼자 남을 텐데 그래도 괜찮겠느냐?”
그제서야 정신이 확! 하고 돌아온 병석이 얼굴을 붉혔습니다.
“마맞다. 어어머니가 있군요. 스스님, 어어머니 때문에 지지금은 안 되겠습니다.”
“그렇지. 어머니 때문에 안 되겠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은혜를 먼저 갚고 나머지는 다음에 차차 생각하기로 하자. 그렇게 해도 되겠지?”
“예. 스님.”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늙어서 파파 할멈이 된 어머니는 병석을 보자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어서 장가를 가야 할 텐데."
"어어머니도 참! 기끼니도 이잇기 어려운데 자장가는 무슨"
병석은 지게를 지고서 집을 나설 채비를 하였습니다.
"나무하러 갈 거냐? 오늘은 날씨도 좋지 않은데 하루 쉬지 그러니?"
"어어머니, 거걱정하지 마세요. 휘휭하니 하한 짐 해서는 곧 돌아오겠습니다. 바바람이 차니 바방에 들어가셔요."
병석은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습니다. 곧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듯이 검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병석은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은 겨우내 나무를 해버려서 멀리까지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쭉 올라가면서 병석은 서둘러 나무를 하였습니다. 병석이 바쁘게 낫질을 해대는 만큼이나 하늘도 빠르게 어두워졌습니다.
눈보라가 퍼붓기 시작하자 병석은 나뭇짐을 지고서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큰 바위 밑에 움푹 들어간 맞춤한 곳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뭇짐을 벗어두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은 계속해서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낫으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관세음보살을 흥얼거리던 병석은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꿈인가요! 아니면, 생시인가요!’
병석의 눈에 연꽃 위에 앉아서 하늘로 오르는 관세음보살님이 보였습니다. (계속)
<용어 해설>
- 떠꺼머리 : 장가나 시집갈 나이가 된 총각이나 처녀가 땋아서 늘인 머리. 또는 그런 머리를 한 사람. 예를 들어 떠꺼머리 를 한 처녀는 노처녀를, 떠꺼머리를 한 총각은 노총각을 비유한 것입니다.
- 도량(道場) : 절집 마당을 말합니다. 도장이라고 적고 도량이라고 읽습니다.
- 합장(合掌) :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펴서 포개는 불교의 인사법입니다.
- 시주(施主) : 승려나 절에게 물건 등을 베푸는 사람을 말합니다.
- 희유(稀有) : 흔하지 아니하다는 뜻입니다.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중생이 어려울 때 그 이름을 외면 곧 나타나 구제한다고 합니다.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하며 널리 숭상됩니다.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중생을 위험으로부터 구제하는 보살로 ‘모든 곳을 살피는 분’이나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보는 이에 따라 33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관세음보살의 공덕과 기적은 〈관음경>, 〈법화경〉 등 많은 불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기도 도량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강화도의 보문사(普門寺)와 남해의 보리암(菩提庵), 그리고 양양의 낙산사(洛山寺)가 대표적인 기도처로 꼽힙니다.
<참고자료>
- 영암군 웹페이지, 영암의 전설 중, 도포면 선불리의 선불이야기에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 김홍도의 그림, 풍속화
- 《부모은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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