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끝> 글 한 줄도 모르는 떠꺼머리총각 살아서 부처님 소리를 듣다 ②

한겨울의 아랫목 같은 옛이야기

글 한 줄도 모르는 떠꺼머리총각 살아서 부처님 소리를 듣다 ②

진영갈매기 2021. 1. 29. 16:51

 

양산 통도사, 홍매화

 

그만 일어나세요. 그곳은 바람이 다니는 길이라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수도 있어요.” 하는 소리가 공중에서 들리는 것 같더니, 환하게 웃던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습니다.

작아지고, 작아지고,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는 하나의 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홀연! 반짝하는 것 같더니 구름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관세음보살

 

병석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다가, 갑자기 들리는 하는 소리에 천지가 새까맣고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좁은 바위틈에서 무심결에 일어나다가 천장에 있는 돌팍에다 머리통을 박은 것이었습니다.

‘아아이고 아아파라.’ 혹이 금방 커다랗게 부풀러 올랐습니다.

병석은 멍청하니 앉아서는, 혹을 문지르며, ‘꿈이었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위틈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화들짝 놀라서는 머리를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그 틈을 빠져나왔습니다.

눈보라는 그쳤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 골짜기를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병석의 눈에는, 아직도 안개에(아니다. 구름이었나?) 싸여 있던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습니다. 세상이 온통 관세음보살님으로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다시 한번 더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립고 안타까웠습니다.……

 

 

남원 노적봉 마애여래 좌상

 

"아아니, 저저것은?" 병석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자신이 몸을 숨겼던 바로 그 큰 바위의 벽에 부처님께서 인자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습니다.

매매일 나나무를 하러 오오며 가며 보던 바위건만, 저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었는데,……

병석은 놀랍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가슴은 방망이질하고 두 다리는 벌벌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병석은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 나뭇짐을 짊어지고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발이 허공에서 떠도는 것 같았습니다. 병석은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산길

 

"어어머니, 어어머니!"

"어찌하여 이제 오느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여 무척이나 걱정했구나."

"무무슨 일이 새생기다뇨, 아아무 일도 어없었습니다. 그그런데, 어어머니!"

병석은 산에서 있었던 일을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구나, 그렇게 올라다녔어도 이제까지 보지 못했다면서.……"

"소소자가 부분명히 보보았습니다." "눈보라 속에서 네가 허깨비를 본 모양이구나."

"어어머니도, 차암! 소소자가 자잘못 보보다니요, 그그럴 리가 없어요."

병석의 눈에는 구름에 휩싸인 관세음보살님과 암벽에서 웃고 계시던 부처님 모습이 번갈아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 좌상

 

다음날 날이 새자마자 병석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재빨리 나무 한 짐을 해서는 짊어지고 그 바위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혹시 어제 자기가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부처님이었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소맷귀로 쓱 훔치며 바위를 쳐다보았습니다.

"흐흠, 여역시. 내내가 바로 봤어."

지난번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부처님은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병석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졌습니다.

조금 있다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가만히 쳐다보니 부처님께서 더욱더 또렷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습니다.

그랬었는데, 놀라워라!’

 

관세음보살

 

부처님 곁에 관세음보살님이 살포시 나타났습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으신 관세음보살님은 부처님을 가까이 와서 만지고 보라는 듯 병석에게 웃으며 손짓하였습니다.

병석은 넋을 잃은 듯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 발 한 발 움직여 바위 앞으로 갔습니다.

그런 다음 부처님의 옷자락이며 손들을 어루만졌습니다.

부처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여,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여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병석은 내친김에 관세음보살님의 옷자락도 만지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관세음보살이 차츰 멀어져 갔습니다. 멀어져 가더니,……

저번처럼 점이 되고, 그리고는 문득! 사라져 버렸습니다.

 

 

"과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쳐다보니 바위에 있던 부처님도 모습이 점점 흐려지더니 마침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아니, 이게 무무슨 이일이람."

병석은 손으로 더듬어보기도 하고 눈을 크게 떠서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았습니다.

병석은 배고픔도 잊은 채 온종일 앉아서 그 바위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바위일 뿐이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습니다. 병석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산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병석은 매일 그쪽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위 근처로 가서는 쳐다봤습니다.

언젠가는 부처님이 웃으며 반기실 것 같았습니다.

병석은 부처님 다시 뵙기를 간절히 기원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한 병석은 그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나무를 일찍 해 놓고서 남은 시간은 내내 바위 앞에 앉아서 보냈습니다.

또렷이 떠오르는 모습대로 정을 대고 망치질을 암벽에 해나갔습니다.

병석은 두 가지 일에 시달려 몸이 몹시 야위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늙은 어머니는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네가 어서 빨리 짝을 찾아야, 마음 놓고 내가 눈을 감을 터인데."

"어어머니도 괘괜한 소소리를,…… 누누가 나한테 시시집온다고."

 

 

병석은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지게를 지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나무를 한 짐 해 놓고는 열심히 망치질하였습니다.

이제 거의 완성이 되어, 부처님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완성되겠군.’

해가 떨어지고 어두침침하게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된 뒤에야 작업을 마치고 병석은 흡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무짐을 내려놓는데 보통 때와는 달리 이상하게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어어머니, 벼병석이 도돌아왔습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병석은 급히 방문을 열었습니다.

방안에는 냉기가 돌았고, 어머니는 반듯이 누워있었습니다.

"아아이고, 어어머니."

뛰어 들어가 붙들고 몸부림쳤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병석은 어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모신, 그 다음 날 다시 정과 망치를 들었습니다.

 

아뿔싸!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부처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렷하던 부처님 모습을 병석은 도저히 생각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바위 앞에 병풍처럼 앉아서, 병석은 마음속 깊이, 부처님을 염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가도 두 달이 가도,……

 

 

구도의 길

 

낙담한 병석은 괴나리봇짐 하나만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정처 없이 발 가는 대로 갔습니다. 오직 부처님 뵙기만을 소원하였습니다.

어딘가 사람 사는 마을에 도착하면 품을 팔았고, 돈이 모이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절 가운데 병석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서른 번의 여름과 서른 번의 겨울이 지나갔고, 병석은 어느덧 늙은 몸이 됐습니다.

눈은 진물이 나고 어두웠으며 허리는 굽고 다리에는 힘이 없어서 이제는 빨리 보고 빨리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지치고 허기진 몸을 잠시 쉬기 위해 병석 노인은 널따란 바위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석양

 

병석 노인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빠졌습니다.

부처님을 만나지 못한 채, 이렇게 허무하게,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일까!”

이때 어디에선가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보시오, 날도 저물었는데 그곳에서 뭘 하고 있소이까.“

돌아다보니 지게에 나무를 한 짐하고 가던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 자잠시 쉬고 이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못 보던 사람인데 어디로 가는 길이시오."

"저정처 어없습니다. 부부처님 계계신 고곳이면 어어디던지 가갑니다."

"순례자이시구먼, 쯧쯧, 행색이 남루하기 짝이 없구려, 저 위에 가면 허물어져 가는 빈 절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찬 서리라도 피하려면 내가 모셔다드리리다.”

고고맙습니다.“

 

 

스님

 

마을 노인은 산길을 오르면서 그 절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 위에 있는 절은 원래 관음사라는 절이외다. 무상 스님이라는 덕이 높으신 스님이 주지였는데 돌아가신 지가 10년이 조금 넘었소이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병석이라는 말더듬이 총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돌아가실 때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는 스님이 유언을 했소이다. 병석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바로 관음사의 새 주지라고,…… 여태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앞으로 관음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소이다. 휴우!“

……

그러니 거사(居士)님이 그 절에 가 계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나중에 임자가 나타나면 돌려주면 되니,……

……

 

 

스님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수산리 절간 아랫마을에서는 관음사에 생불(生佛)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치는 법고와 범종 소리는 옆에서 듣고만 있어도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법고와 범종

 

북과 종 치는 것에 몰두해있는 스님의 모습은 영락없이 부처님 형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소리를 듣는, 모든 대중이,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불 올릴 시간이 되면, 모두가 입을 삐쭉거렸습니다.

스님이 예불문 하나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데다가 말까지 심하게 더듬었습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한번 그 절에 갔다 온 사람은 반드시 다시 절에 찾아와 예불을 드렸습니다.

스님의 더듬거리는 예불과 우물거리는 설법을 부처님의 품처럼 그리워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노릇을 얼마나 똑 부러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조선 팔도의 어떤 스님이라도 이 스님보다 더 잘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강희안 그림, 석공도

 

스님은 절 일을 하는 틈틈이 사찰 밑의 암벽에 가서 마애불을 조성했습니다.

수 삼 년 세월이 흘러 마애불 조각이 끝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 좌상

부처님이 누구에게는 보이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어제는 보였다가도 오늘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고, 어제는 보이지 않았다가도 오늘은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그냥 화알짝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스님의 별호가 그냥 웃지요, 스님이 되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생불이 있다 하여 그 절을 선불사(仙佛寺)라 부르고, 선불사 아랫마을은 부처가 사는 곳이라고 하여 선불마을[仙佛洞]이라고 불렀습니다.

 

 

옛 선시(禪詩) 한편 보탭니다.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온종일 봄을 찾아도 찾지 못하고 돌아와

芒鞋遍踏隴頭雲 (망혜편답롱두운)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

歸來偶過梅花下 (귀래우과매화하)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봄은 이미 매화나무 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송나라 무명의 비구니 지음>

 

 

양산 통도사, 홍매화

 

 

<용어해설>

- 허깨비 : (). 없는데 있는 것처럼, 또는 다른 것처럼 보이는 물체.

- : 돌에 구멍을 뚫거나 돌을 쪼아서 다듬는, 쇠로 만든 끝이 뾰족한 연장.

- 괴나리봇짐 : 걸어서 먼 길을 떠날 때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작은 짐.

- 생불(生佛) : 살아있는 부처라는 뜻으로, 덕행이 높은 승려를 이르는 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종교학과 교수팀이 세계의 불교 전통에 관해 출간한 부처의 비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나라 숭산(崇山, 1927~2004) 스님을 달라이 라마, 틱낫한,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평가했습니다.

거사(居士) : 우바새, 재가에서 불도를 닦는 사람

- 칠정례(七頂禮) : ‘지심귀명례(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고 예배드린다)’가 예불 문에 일곱 번 나오기 때문에 칠정례라고 합니다.

- 마애불(磨崖佛) : 자연 암벽에 부조(浮彫) 또는 음각으로 조각한 불상

 

<참고자료>

- 《부모은중경

- 영암군 웹페이지, 영암의 전설 중, 도포면 선불리의 선불 이야기에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 영암군 왕인 축제 홈페이지

- 김홍도의 그림, 풍속화

- 강희안 그림, 석공도

- 남원 노적봉 마애여래 좌상

-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 좌상

- 영암 월출산 구정봉 마애여래 좌상

- 송나라 무명의 비구니가 지은 시 한 편

- 양산 통도사, 홍매화

 

링크 부탁

* 유튜브 쏘클극장 구독 부탁드립니다.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6Oer7r5t6Kb1gmuR9jaQzA

- 방랑자 블로그 https://bonghwa.tistory.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eople/%EC%9D%B4%EB%8D%95%EC%A7%84/100057939819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