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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정원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진영갈매기 2020. 12. 17. 19:37

경북 군위 법주사 <백거이와 도림선사>

 

 

시인 백거이(白居易, 樂天, 772~846)는 주지하다시피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불리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시인이다.

그가 한번은 지방에 관직을 맡게 되었다.

마침 그 고장은 고승인 조과도림(鳥窠道林, 741~824)선사가 살고 있었다.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부임하자마자 도림 선사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뜻입니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

세 살짜리 아기도 그건 알겠습니다.”

세 살짜리 아기도 말은 할 수 있으나, 팔십이 된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

말끝에 백거이는 절을 하고 물러났다.

위의 대화는 불교가 실천의 종교임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즉 삶의 진정한 가치는 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해인사 소장 <영산회상도>

 

 

백낙천과 도림 선사 사이에 오고 간 말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자정기의 시제불교(自淨其意 是諸佛敎)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일곱 부처님

 

위의 말을 보면 모든 부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반드시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나쁜 것을 하지 말 것, 착한 일을 할 것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을 행하기 이전에 악을 짓지 말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부처님은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악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즉 선한 사람이나 행동이 없어서 나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가 힘들고 혼란한 것은 개인과 집단이 서로에게는 해서는 안 될 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도 역시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다.”는 글을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맞다.

많은 사람이 착한 일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착한 일의 밑바닥에 욕심의 검은 구름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없을까?

선행이 메이크업에 불과한 사람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악한 일을 하는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행동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세상이 악한 것은 사람들이 많이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잘못 배워서 그럴 가능성이 훨씬 크다.

많은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하는 줄 모른다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면?

선이든 악이든 행동을 하기에 앞서 마음을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처님은 피상적인 착한 일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성찰을 통한 착한 일을 권장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칠불>

 

 

절집에서는 이 게()를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고 한다.

칠불통계게란 과거 일곱 부처님이 공통으로 받아 지녀 항상 잊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한결같이 우리에게 당부한 훈계라는 의미가 있다.

곧 지역이나 시대에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불변의 가르침이다.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미 여섯 명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했다.

첫 번째 부처님은 비바시불, 두 번째는 시기불, 세 번째는 비사부불, 네 번째는 구류손불, 다섯 번째는 구나함모니불, 여섯 번째가 가섭불이고 석가모니불이 일곱 번째다.

불교는 과거와 미래, 현재의 삼세에 걸쳐 각각 천 명의 부처가 출현한다고 말한다.

과거칠불은 전 3불과 후 4불로 분류되는데, 3불은 과거에 출현했던 천 명의 부처 가운데 마지막 세 명, 4불은 현재에 등장한 천 명의 부처의 최초 네 명이다.

우리는 여기서 칠불이 우주, 즉 이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업()이라고 한다.

업에는 10가지가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업으로 표현한다.

몸으로 하는 업에 세 가지가 있으니 살생, 도적질 그리고 삿된 음란함이 있다.

입으로 하는 업에 네 가지가 있으니 거짓말. 꾸미는 말. 이간질 남에게 독설을 퍼붓는 말이 있다.

뜻으로 하는 업에 세 가지가 있으니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있다.

이상의 열 가지를 잘 닦고 행하면 십선업(十善業), 즉 선행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십악업(十惡業), 즉 악행이 된다.

 

법구경은 말한다. “일백 겁을 지날지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인연이 모여 서로 만나는 때에는, 인과응보를 반드시 받게 된다.”

 

 

 

<참고문헌>

<전등록>

<법구경>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칠불>

해인사 소장 <영산회상도>

경북 군위 법주사 <백거이와 도림선사>

용경식 옮김, 에밀 아자르 지음,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