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끝> 기생으로 변신한 귀신에 혼쭐 난 전라도사

한겨울의 아랫목 같은 옛이야기

기생으로 변신한 귀신에 혼쭐 난 전라도사

진영갈매기 2020. 12. 5. 12:44

 

전주 한목마을의 야경

 

기생으로 변신한 귀신에 혼쭐 난 전라도사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

 

 

 

전라도사(全羅都事) 김 아무개가 전주 남청(南廳)에 있을 때의 일이다. 기생들은 모두 뒤채에 있었고 종들도 물러나 다른 곳에서 쉬고 있었다.

 

날이 저물 무렵 김모가 홀로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한 기생이 신발을 끌고 동헌 앞을 지나갔다. 얼른 봐도 그 옷차림이 매우 곱고 아름다웠으며 용모와 자태가 세련되고 우아하였다.

 

 

신윤복 <미인도> 상반신

 

 

게다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련하고도 해사한 표정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여염집 부인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이라 김모는 스스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물어보는데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너는 누구인가?”, “, 전주 교방(敎坊, 기생학교)의 기생입니다.” 나지막하고도 간드러진 음성이 마음을 울렸다.

 

 

사진은 평양기생학교. 기생학교 사진으로서는 유일하다

 

 

교방 기생은 전에 내가 모두 익히 보았는데, 어찌해서 너만 못 보았을까?”, “새로 온 기생이 옵니다. 전주 관원 친족의 사랑을 입어 깊은 곳에 은밀히 있다가 오늘 마침 일이 있어 이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신윤복의 그림 <월야정인>

 

김모가 그녀를 가까이 오라 하여 웃고 즐기다가 시간이 지나자 화장을 드리우고 베개를 가까이하였다. 이로부터 정이 흠뻑 들어 여인은 새벽이면 갔다가 저녁이면 들어와서 날마다 두 사람이 함께 잤다.

 

 

신윤복의 그림 <쌍검대무>

 

나중에는 그 기생은 대낮에도 김모의 곁에 있으면서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김모는 정신은 말짱했으나 어느 때부터인지 몸이 말라갔고, 점차 기운이 빠지다가는 결국에는 자리에 눕게 되었다. 김모도 자기가 귀신들렸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전라감사 고형산(高荊山, 1453-1528. 조선 중기의 문신), 전라도사 김모가 귀신을 만나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다.

 

 

 

굿판

 

 

이를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하고 말하더니, 전주 관원에게 일러 관내의 무녀(巫女)들을 다 모으게 하고는, 각각 기악(妓樂, 기생과 악기)을 갖추어 한바탕 굿판을 벌이도록 하였다.

 

이에 아래에서는 감사의 명을 받들어 제수를 풍성하게 준비해서는 남청 뜰 동쪽 별채에 자리를 마련하고 뭇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몸을 들썩거리면서 귀신 기생이 김모에게 말했다.

 

저도 가서 보고 싶지만, 당신이 저를 버리고 가실까 두렵습니다.” 그러자 김모가 말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니, 네가 나를 버릴까 두려울 뿐이다. 어찌 내가 너를 버리겠느냐.”

 

귀신 기생은 이 말을 얼마간 믿고 가서 구경하는데, 몸을 반쯤 병풍 사이에 숨겨 빈번히 뒤를 돌아보다가 이내 구경을 그만두고 다시 돌아왔다.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 <무당춤>

 

그러다가 풍악 소리가 높아지자 다시 또 가서 구경했으며, 여러 번 이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였다. 굿판에서는 풍악을 더욱 성대하게 벌여놓고 술과 음식을 끊임없이 차려 내왔다.

 

다음 날 밤에도 또 굿판이 벌어졌는데, 어제보다도 더 풍성하게 음식을 차리고 풍악을 높이 울렸다. 그러자 귀신 기생은 온몸을 병풍 안으로 다 들여놓고는 다시는 김모가 있는 남청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무속인의 작두타기 

 

감사는 미리, 한양으로 가는 길가의 모든 역()에 즉시 안장을 갖춘 상품의 준마를 대기시키도록,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감사는 귀신 기생이 굿판에 빠져 돌아오기를 잊고 있는 틈을 타서 한밤중에 김모가 말을 타고 도망치도록 하였다. 김모는 새벽이 될 때까지 역마(驛馬)를 바꾸어 타며 달려 다음날 정오가 못되어 서울의 집에 도착했다.

 

 

준마

 

집에 들어가서는 문, 마루, 행랑 등을 쭉 둘러 단사(丹砂, 붉은 부적)를 붙였다. 이틀이 지나자 그 기생이 지붕 위에서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붉은 색 부적

 

 

낭군께서는 제게 왜 이리 박정하게 대하십니까. 비록 저에게 싫증이 났다 하더라도 제가 어찌 낭군에게 무정하겠습니까! 그런데 붉은 옷 입은 군졸들이 문에서 막고 있으니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정답고도 그리운 정인(情人)의 목소리에 김모는 자기도 모르게 대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소맷자락을 잡는다. 옆눈으로 힐끔 바라보니 큰아들놈이 아닌가! 이놈이 감히 제 아비에게,…… ? 하고 쇠 된 목소리를 내려는데 먼 산을 보듯이 살그머니 눈짓한다.

 

 

 

아름다운 조선 여인

 

 

눈짓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드니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아이 어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모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쫙! 하고 빠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렇게 착한 아내를 두고, 이거! 내가 뭐 하는 짓거리인가?’

 

 

귀신

 

시간이 지나도 대답이 없자, 본색들 드러내는 듯, 귀신기생이 지붕에서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자 포기한 듯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다시는 그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김모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달포쯤 지나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속인의 굿판 

 

 

대개 여인들이 무당굿을 좋아하는 것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전라감사 고형산은 그러한 정상을 잘 알아 제대로 이용하였으니 지혜롭다고 이를 만하다.

 

 

신윤복의 그림 <주유청강>

 

 

신윤복(申潤福, 1758~1814)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화가. 산수화와 풍속화의 대가.

 

 

[참고 문헌]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기녀 귀신의 빌미’<어우야담>(돌베개,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