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끝> 귀신과 싸워 죽은 남편을 다시 살려낸 이씨 부인

한겨울의 아랫목 같은 옛이야기

귀신과 싸워 죽은 남편을 다시 살려낸 이씨 부인

진영갈매기 2020. 12. 5. 13:03

[경북 울진 불영사(佛影寺)의 백극재 환생전기(還生殿記)]

 

김홍도 <타작도>

 

옛날 옛적에 백극재白克齋라는 젊은 한량이 살았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더불어 바깥을 쏘다니며 놀기만 좋아할 뿐 집안 살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내 이 씨가 바느질 품, 빨래품을 팔아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부인의 친정은 내로라하는 부자였습니다만 이 씨는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빨래터

바느질 품

 

가장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 지붕의 초가를 몇 년이나 잇지 못해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과 별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면 집 뒤쪽 대나무 숲 뒤에 자리한 샘터에 가서는 첫물을 떠 와서 백자에 담았습니다. 그런 다음 소반 위에 백자에 담은 청수(淸水)를 놓고는 간절하게 부처님에 기도하였습니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 집 가장, 주색잡기는 이제 좀 그만 즐기고, 책을 좀 읽게 해주십시오. 백성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런 다음 매일 한 시간씩 부뚜막에 쭈그리고 앉아 '법화경'을 사경 했습니다.

 

<법화경>

 

 

하루는 보통 때처럼 바깥을 헤매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 보리죽이나마 얻어먹으려고 등허리에 붙은 배를 움켜쥐고 극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무언가 덩어리진 것을 먹고 있었습니다. ‘고기다.’ 백극재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가장을 보자 아내 이 씨는 서둘러 무릎 아래로 그것을 숨기고는 말했습니다.

이제 오십니까. 배고프겠습니다. 얼른 씻고 저녁 드십시오.”

 

저녁에는 고기반찬을 먹겠구나.’라고 생각한 극재가 한쪽에 차려져 있는 개다리소반의 밥상 보를 잽싸게 벗겼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간장이 들어 있는 종지 하나와 늘 먹던 보리죽 한 그릇뿐이었습니다.

 

극재가 아내에게 캐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방금 무얼 먹었소?”

아내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볼이 부은 극재가 재차 물었습니다. “무릎 아래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이오?”

아내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대답을 듣고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민 극재가 말했습니다. “내가 눈으로 직접 봤소. 마당에서 보니 고기를 먹고 있었소. 내가 방으로 들어오자 치마 밑으로 감추었잖소? 하늘 같은 가장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극재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꾸 없이 아내가 바느질을 계속했습니다. 극재는 아내의 치마폭을 열어젖히고는 무릎 아래 감추었을 고기를 찾았습니다.

 

그러자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무릎 아래에서 주섬주섬 빨랫감 보따리를 꺼냈습니다. “서방님, 이것은 그저 빨랫감일 뿐입니다.” 아내는 미안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습니다.

 

바느질을 오늘 안으로 끝내야 내일 품삯을 받습니다. 집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바느질을 끝내지 못하면 내일부터 하늘 같은 가장(家長)을 굶겨야 합니다. 그 생각을 하니 입이 마르고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지 아래로부터 시큼한 신물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빨랫감에 물을 묻혀 남아 있는 풀기를 핥으면서 허기를 속이는 중이었습니다.……

 

순간 극재는 깨달았습니다. 밥상 위에 있는 보리죽은 아내의 아침이었다는 것을,…… 아내를 보기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 천하의 몹쓸 놈, 그래놓고도 네가 남자고 하늘 같은 가장이냐.’

 

극재가 부인에게 잘못을 빌려고 무릎을 꿇자 이 씨가 남편의 행동을 말렸습니다. 옥신각신하는 중에 서로의 몸이 닿았습니다. 그 일을 신호로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섧게 울었습니다.

 

 

장날

 

다음날부터 극재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깥으로 나도는 대신 주야장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날이 되면 일꾼처럼 차려입고 장에 가서 막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을 한 푼도 빼놓지 않고 아내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게 보내기 어언 삼 년 마침내 백극재가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1396년 백극재는 경북 울진 현감으로 임명되어 떠났습니다. 그런데 임지로 내려가는 도중 병에 걸리더니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부인 이 씨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퍼서 남편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고을의 관리에게 울진 지방에 기도를 올릴 만한 절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니 그 관리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서쪽에 적당한 절이 있는데 불영사(佛影寺)라 합니다. 전각이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안에 모셔진 불상도 영험하고 주지 스님도 덕이 높기로 인근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불영사 탑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상여를 불영사 탑 앞에 옮기도록 하고는, 부처님 앞에 분향하고 빌었습니다.

고생만 하다 비명에 간 제 지아비를 꼭 극락왕생하게 해주십시오.”

 

법당에 꿇어앉아 기도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부인은 기도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제 남편은 기필코 다시 살아 돌아와야 합니다. 부처님!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고 대신 제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이씨 부인은 지극한 마음으로 밤낮을 잊고 3일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3 일째 되던 날 너무 울다 지쳐서 자기도 모르게 설핏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부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깨비

 

네 남편 극재는 나와 지난 아홉 생에 걸친 철천지원수다. 그래서 어느 생이라도 백극재가 즐거움을 누린다고 여겨지면 내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고 그놈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네가 왜 나타나 방해질을 하고 난리냐. 그까짓 가시버시가 뭣이라고.”

 

안됩니다. 차라리 나를 데려가시오. 우리 주인은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은 분이오, 저 불쌍한 백성들을 어쩔 것이오. 나를 잡아가시오.”라고 부인은 도깨비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하루 밤낮을 울부짖었습니다.

 

마침내는 부인의 기도에 도깨비가 항복선언을 하였습니다.

아아! 그 여자! 지독하다, 지독하다 해도 이렇게 지독한 여자가 다 있었나! 내가 졌다, 두 손 완전히 들었다. 안심해라. 이제는 떠난다. 중풍들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런데, 이건 알아라. 네 기도 때문에 내가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너의 신랑이 파락호 노릇을 하고 다닐 적에 네가 매일 새벽마다 부뚜막에서 법화경 사경을 하지 않았느냐. 그것을 부처님이 다 알고 계시고 내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구나. 그러니 난들 어찌하겠느냐. 네 신랑과 나의 아홉 생에 걸친 원수를 아내인 네가 법화경 사경으로 풀었구나.”

 

 

그대의 간절한 믿음에 부처님이 감응하셨으니 어찌하랴! 나는 인제 간다.” 말을 마친 원귀는 하늘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부인이 깜짝 놀라 일어나서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남편이 누운 관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죽었던 남편이 환생해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환생의 기쁨으로 탑 앞에 있는 요사를 환희료, 금당(金堂)을 환생전(還生殿)이라 부르고 불영사 중수에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중수가 다 끝나자. 부부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을 금물로 사경(寫經)해 불영사 절에다 바치면서 부처님의 은혜를 되새겼습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이극재는 부인 이 씨를 평생 용궁의 공주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인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아니라 백성을 받들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기로 부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昔光山白先生克齊除蔚珍縣, 下車三月 忽然而逝, 夫人李氏問此境有可禱處否, 一吏曰有佛影寺在, 夫人趣令轝櫬焚香, 泣祝於佛前, 三日三夜, 奄然還生, 卽以塔寮爲歡喜寮, 佛殿爲還生殿, 因寫金字蓮經七軸, 仰謝佛恩云云 永樂六年戊子八月 日 通訓大夫 行安府判官 李文命 謹識)

백극재가 울진 현감으로 제수된 지 3개월 만에 홀연 급서하였다. 부인 이 씨가 이 근처에 기도처가 없는지를 물으니, 한 아전이 불영사가 있다고 하였다. 부인은 속히 수레에 관을 싣고 분향하게 하고, 불전에서 울며 사흘 밤낮 기도할 즈음 갑자기 남편이 환생하니 불당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이에 불전을 환생전이라 하고 금자로 묘법연화경 7축을 써서 부처님의 은혜를 받들어 감사하였다고 한다.”

 

위의 글은 환생(還生)한 지 불과 12년 만인 1408년에 경북 안동의 판관(判官) 벼슬을 했던 이문명(李文命)이 지었습니다. 따라서 백극재란 인물이 실존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환생전기에 나오는 것 외에는 달리 행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를 광산 백 선생이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본관이 광산, 곧 광주 백씨라는 사실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울진군지를 찾아보면 조선이 건국한 지 2년 뒤인 1396년에 백 모()’ 현령의 부임 사실이 간략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백극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활동연대가 1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데다가 성씨도 같기 때문입니다. 불영사의 환생전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건물 이름입니다.

 

환생전기에 등장하는 법당과 탑의 묘사는 지금 불영사의 대웅전과 그 바로 앞에 있는 삼층석탑의 배치와 같아, 더욱더 사실감을 더해줍니다.

 

누구든지 마땅히 녹여 없애야 할 두꺼운 업장이 있다면 오로지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며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사경하면 된다는 것을 이 환생담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영사황화실현판(佛影寺黃華室懸板)

 

 

 

* 참고문헌

 

이수경 편저, <불보살영험이야기>(운주사, 2015)

신대현 지음, <테마로 읽는 우리 미술>(혜안, 2017)

불영사황화실현판(佛影寺黃華室懸板)

환생전이란 명칭이 황화실로 바뀐 시기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명칭이 바뀐 시점에서 이 현판을 걸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선 후기 김창흡이 울진산수기(蔚珍山水記)를 쓸 때까지도 환생전으로 기술한 점에서 황화실로 명칭을 바꾼 시점은 적어도 그 이후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