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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아랫목 같은 옛이야기

신흥사를 위기로부터 구한 영특한 동자승

진영갈매기 2020. 12. 5. 12:49

설악산 신흥사

 

아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 때 경관을 빼어나게 하려고, 전국에서 가장 잘생긴 바위들을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게 하였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 금강

 

 

조물주는 12천 개의 봉우리로 금강산을 만들 계획을 세웠는데, 이때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잘생긴 바위 하나가 이 소식을 들었다.

 

이거 잘됐구먼. 내가 울산 고을에서 더는 견줄 곳이 없었는데, 금강산에 가서 나의 위용을 널리 자랑해야겠어.”

 

울산바위는 지체하지 않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몸집이 워낙 커서 다른 바위에 비해 가는 길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북으로 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며칠이 지나자 울산바위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야 설악산에 도달했다.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정오나 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설악의 가을

 

아이고 싶어서급하게 떠날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서는데 옆에서 다른 바위가 소식을 전해왔다. “이보게, 울산바위. 금강산에 벌써 12천 봉우리가 다 차 버렸다네. 우리는 가도 소용이 없게 되었어.” ‘

 

울산바위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기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이 없어서 설악산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설악산의 제일 바위로 이름이 난 것이 겨우 체면치레는 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듯 조선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시절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라 불교를 업신여기는 유생(儒生)들이 많았다.

 

유생

 

 

 

이때 설악산 유람을 나섰던 울산의 원님이 신흥사에서 울산바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옳다구나 하고 절의 주지 스님을 찾았다.

 

 

원님의 행차

 

 

 

절의 주지가 나와 원님을 맞이했다. “나무 관세음보살! 무슨 일이기에 울산 원님께서 이곳까지 납시셨습니까?”

 

 

 

울산 원님이 말했다. “내가 신흥사에 받을 빚이 있어서 왔소이다. 이 절 뒤에 있는 울산바위가 울산에서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울산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이니 셋돈을 내야 하겠소.”

 

 

 

울산 바위

 

 

신흥사에서는 돈을 내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해마다 울산에서 세를 받아 갔다. 그러던 중 어느 해인가 울산에서 세를 받으러 올 때가 되었는데 절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울산 고을의 수령이 오자 신흥사 주지 스님이 말했다.

 

 

 

설악산 신흥사

 

 

올해는 사정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절의 대중 스님들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중이니 내년까지 셋돈 내는 것을 좀 연기해주십시오하지만 울산 원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며칠 내로 돈을 내지 않으면 절을 빼앗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근심에 쌓여 전전긍긍하던 신흥사 주지 스님은 산중공사를 열어 대중에게 사실을 알리고 해결방책을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갸우뚱갸우뚱하고 있는데 한 동자승이 큰 소리로 의견을 냈다.

 

제가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 대중 스님들은 아무 걱정 없이 수행에만 정진해 주십시오.”

 

 

동자승

 

뚜렷한 대책이 없었던 대중 스님들은 그저 동자승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공사를 끝냈다. 며칠이 지나 울산 고을 원님이 도착하자 동자승이 나와 손님을 맞이했다.

 

원님.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희 절에서는 저 울산바위가 무척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마침 원님께서 이곳까지 행차하셨으니 잘 됐습니다. 내년부터는 저 바위를 울산으로 보내고 그곳에 곡식을 심어 절 양식을 만들려 하니 가져가 주길 부탁드립니다.”

 

원님은 깜짝 놀랐다. “아니, 저 어린 동자승이 무슨 꿍꿍이로 바위를 쉽게 돌려준다고 하지?” 하지만 난감한 속마음을 숨긴 울산 원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동자승에게 말했다.

 

그래, 잘 됐구나. 내가 저 바위를 가져가고 말 것이야. 사흘 안에 바위를 새끼로 묶어 놓아라. 그리하면 가져가겠다.”

 

그 말을 들은 동자승은 기쁜 표정으로 답했다. “. 그렇게 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사흘 후에 오셔서 꼭 가져가도록 하십시오.”

 

울산 수령이 돌아가자 신흥사 주지 스님이 동자승을 채근했다. “아니, 너는 어떻게 저 큰 바위를 새끼로 묶어 놓겠다고 확답을 했느냐? 이제 우리는 꼼짝없이 쫓겨나게 생겼구나.

 

그러자 어린 동자승이 침착하게 말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저에게 생각이 다 있습니다.” 그러더니 대중 스님을 모아 달라고 주지 스님에게 부탁했다. 대중이 다 모이자 동자승이 말했다.

 

저기 청초호와 영랑호에 가면 해초가 많을 것입니다. 바닷물을 머금은 그 풀들로 새끼를 꼬아서 울산바위에 올려놓고 태우면 소금 성분이 있어, 마치 짚으로 꼰 새끼로 바위를 묶은 듯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울산 원님도 꼼짝없이 바위를 가져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될 것입니다.”

 

 

청초호

 

 

다음날 신흥사 스님들은 청초호와 영랑호로 가서 해초들을 베어다가 새끼를 꼬았다. 그리고는 울산바위에 둘러친 후 불을 붙이니 불이 탄 뒤에도 소금 성분과 재가 바위에 달라붙어 마치 새끼를 둘러놓은 듯이 보였다. 사흘 후 신흥사에 다시 도착한 원님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랑호

 

 

아니, 어떻게 저 바위에 새끼를 꼬아 묶어 놓았지? 분명 신통력을 발휘한 엄청난 힘을 가진 도사가 신흥사에 있는 게 틀림없어.”

 

 

 

신흥사

 

 

갑자기 주눅이 든 원님이 조용히 말했다. “소생이 물색모르고 절에 큰 폐를 끼친 것 같소이다. 그냥 이대로 돌아갈 터이니 신흥사의 대중 스님들 부디 수행 열심히 해서 큰 인물이 되도록 하시오.”

 

해초(海草)로 청초호와 영랑호를 서로 묶었다고 해서 한자로 묶을 속()’자와 풀 초()’ 자를 써서, 이때부터 그 지역을 속초(束草)’라는 지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울산바위의 울산(蔚山)’도 사실은 지명(地名) 울산이 아니라, 바위의 생김새가울타리같이 생겼다고 하여 울산바위라고 불린다는 말도 있다.

 

[참고]

울산바위의 전설(문화콘텐츠닷컴,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