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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정원

세계 초일류기업의 최고 경영자, 붓다

진영갈매기 2020. 12. 5. 12:34

1). 세계 초일류기업과 최고 경영자

 

현재 세계 초일류기업은 애플, 구글, 아마존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 등이 있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세운 IT 브랜드이고, 구글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1998년 설립한 미국의 인터넷 검색회사이며, 아마존은 제프 베저스가 1994년 설립한 세계 최대의 인터넷 전자 상거래 업체이다.

 

 

 

구글과 래리 페이지

 

 

 

아마존과 제프 베저스

 

삼성은 1938년 이병철이 창립했고, 이건희에 이어 이재용이 이어받은 삼성은 세계 유수의 기업이자 현재 우리나라 재계 서열 1위의 거대기업집단이다.

 

삼성

 

 

 

흔히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본래 부자이던 사람은 망했다 하더라도 얼마 동안은 그럭저럭 살아나갈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이다.

 

다른 한편 부자는 삼대를 못 가고 빈자는 삼대를 안 간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아무라 부자라도 삼대쯤 지나면 되면 망할 수가 있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삼대째가 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애플, 구글, 아마존, 삼성 가운데 100년이 넘는 기업은 없다. 삼성을 제외하면 50년도 채 안 된다. 위에서 언급한 기업들은 앞으로 얼마나 갈까? 1000?, 500?, 50? 모를 일이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겨진다. 이 세상은 결국 돌고 도는 것이 아니겠는가!

 

2). 최고 경영자(CEO) 붓다가 가지고 있는 함의

 

불교는 2500년 동안 세계 초일류기업이었다. 앞으로도 망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불교를 기업으로 표현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요즈음 세태에 비추어 방편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인지하기 바란다. 붓다뿐 아니라 공자와 노자의 사상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주장에 관해서는 곧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붓다의 비전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겁을 내는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될수록 붓다(더 나아가서 공자, 노자)의 사상은 더 필요할 것 같다. 왜 그럴까?

 

지금 이 자리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고,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 붓다의 비전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

 

붓다의 가르침 중 대표적인 언명은 중생이 곧 부처이다. 이 말은 중생 안에 부처가 될 가능성이 숨어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땡감

 

 

절집에서는 종종 땡감이 곧 단감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봄철의 땡감이 여름을 지나서 가을이 되면 단감이 된다는 말이다. 즉 땡감은 어떤 상황에도 가을에 사과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땡감 안에는 단감이 될 인자(因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단감

 

 

따라서 모든 사람은 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초로 그 가능성을 현실화한 사람이 바로 석가모니이다. 이 석가모니를 붓다라고 한다. 즉 석가모니는 붓다이면서 부처이고, 우리는 부처가 될 수는 있지만, 붓다는 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붓다는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라고 볼 수 있고, 부처는 석가모니를 포함한 모든 중생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언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붓다의 가르침이 불교이고 그 불교 안에서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

 

3) 불교의 존재 이유

 

종교는 근본적으로 세상과 중생을 걱정하면서 생겨났다. 뒤집어 말해서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특정 종교를 걱정하고 있다면 그 종교는 문제가 많다.

 

단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세상(과 세상에 사는 사람)을 걱정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닌 마구니의 가르침이자 집단에 불과하다.

 

불교가 세계 초일류의 사상이고 그러한 이유는 세상과 세상에 사는 사람을 걱정하고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붓다의 말씀이 과거 2500년 동안 유효했고 앞으로도 2500년을 넘어서 유효할 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불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불교를 걱정하고, 많은 문제 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면 그때가 바로 불교가 망할 때라는 것이다.

 

4) 붓다의 가르침: 연기와 자비

 

붓다 더 나아가서 붓다의 가르침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기에 2500년 동안 세계 초일류기업이었을까? 라고 질문할 때, 많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핵심적인 이론 하나만 끄집어낸다면 연기설(緣起說)’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 연기란 무엇인가? 생에 연하여 노사가 있다. 여래가 출세하든 출세하지 않든 관계없이 이 세계는 머물고 있으니 법으로서 머물러 있는 것이며, 법으로서 결정된 것이다. <잡아함경>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 직접적 원인)과 연(: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난다는 의미를 가진다. 붓다는 말한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부처님의 말이 곧 법이다. 따라서 불경의 모든 내용이 법이다. 이 말은 팔만대장경을 한 단어로 축약하면 연기가 되고, 연기를 풀면 팔만대장경이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연기 사상을 올곧이 증득하면 곧 붓다의 사상을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눈앞에 종이 1장이 있다. 이것을 연기론적으로 본다면 종이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름이 모여서 비가 되고 비가 내려서 나무를 만들고 나무로 펄프를 만들고 펄프를 가공해서 종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이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펄프로 말미암아 종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펄프도 나무도 비도 구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종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곧 연기설은 자타불이, 즉 나와 너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따라서 같은 몸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구상의 70억 인류가 다 네가 되므로 너는 나와 같은 몸이 된다.

 

이것을 동체(同體)라고 한다면 이 동체를 우리는 자기 몸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 중생과 자신이 다 동일체라고 생각하여 70억 인류에 대하여 대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 즉 자비 사상이 나온다.

 

연기(緣起)=>자타불이=>동체=>동체대비=자비(慈悲)

 

불교적 시각에서 연기를 안다고 함은 자비를 증득 함을 말한다. 즉 내 몸이 70억 개의 세포로 되어 있다고 여기고 그 세포 하나하나에 대자대비의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연기이자 자비이다.

 

이 우주의 모든 사람은 인연 관계에 있다. 불교를 하나의 집이라고 본다면 그 집은 두 개의 기둥으로 되어있다. 그 한쪽 기둥의 이름을 연기라고 한다면 다른 한쪽의 기둥의 이름은 자비이다. 연기와 자비는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내 몸에는 하염없이 자비롭지만 내 몸을 뛰어넘는, 이웃사회국가세계지구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주지하다시피 불교 2,500년 역사를 일관하는 사상은 연기법과 그 연기법의 실행에 대한 것이다.

 

만약 불교를 기업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불교라는 기업은 연기와 자비를 기업 경영의 핵심이라고 본다. 붓다의 연기법은 우리 지구촌을 구제해주고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걸어 다니게 만드는 핵심 교리가 된다.

 

[참고문헌]

<잡아함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