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끝> 호랑이로 환생해 전생의 원한을 푼 처녀

한겨울의 아랫목 같은 옛이야기

호랑이로 환생해 전생의 원한을 푼 처녀

진영갈매기 2020. 12. 26. 10:00

 

극락으로 가는 배

 

아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쯤이었다.

통도사 백운암에서 한 젊은 스님이 홀로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있었다.

장차 교학의 훌륭한 강사가 되기를 서원한 이 스님은 아침저녁 예불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부처님께 기원하면서 경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통도사 백운암

 

아직 영축산 기슭 군데군데에 잔설이 남아있던 어느 이른 봄날이었다.

스님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경전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아리따운 아가씨의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스님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깊은 산중에 게다가 대낮도 아닌 밤중에 웬 여인의 음성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잘못 들었구나 싶어 다시 경책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젊은 여자의 음성이 분명하고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스님, 안에 계십니까?”

뉘신지요?”

엉겁결에 방문을 연 스님은 이번에는 귀가 아니라 눈을 의심했다.

아름다운 처녀가 바구니를 든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이렇게 늦은 시각, 웬일입니까?”하고 묻자,

 

처자가 구름처럼 아련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소녀, 친구들과 나물 캐러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막막하던 차 불빛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어려우시더라도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하여 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젊은 스님은 말했다.

사연인즉 딱하군요. 그러나 소승 아직 젊은 나이에 혼자 수행 중이고, 방이라고는 달랑 하나밖에 없으니 매우 난처합니다.”

소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하오나 스님, 이 밤에 소녀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소녀의 간곡한 청을 들은 스님은 어두운 산길에 어린 처녀를 혼자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난처하긴 했지만, 방의 아랫목을 그 처녀에게 내준 스님은 윗목에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다.

 

 

 

스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정좌한 채 경전을 읽었고, 고요한 산중에 울려 퍼지는 그 음성은 마치 무아지경의 세계로 처녀를 인도하는 것 같았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처녀는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은 늘 백운암 스님에게 가 있었다.

 

사모하는 정이 날이 갈수록 깊어가더니 마침내 처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상사병을 앓게 됐다. 양친 부모가 무남독녀인 딸을 위하여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대충 눈치를 챈 어머니가 처녀를 살살 달랬다.

얘야, 내 보물아! 소원을 다 들어줄 테니 어떻게 된 연유인지 속 시원히 말해봐라.”

 

마침내 처녀는 지난날 백운암에서 만났던 젊은 스님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털어놓았다.

이루지 못할 사랑인 줄은 알지만 자기도 자기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딸의 사연을 들은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스님을 찾아갔다.

 

 

통도사 백운암

 

스님, 스님이 아니면 제 딸이 죽습니다. 한 생명 건지신다 생각하시고 제 딸과 혼인하여 주십시오.”

아무리 애걸하여도 스님의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이 병이 깊어지자 처녀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어머니, 소녀 아무래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불효를 용서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스님 얼굴 한 번만 보고 죽는다면 소녀 원이 없겠사옵니다.”

 

처녀의 마지막 부탁을 부모에게서 들었지만, 젊은 스님은 매몰차게 거절하고는 끝내 처녀의 집을 방문치 않았다.

얼마 안 가 처녀는 죽었다. 그녀는 가슴을 맺힌 한을 풀 길이 없어, 원령(怨靈)에 사로잡힌 채, 호랑이로 다시 태어났다.

 

 

통도사 불이문 천장 호랑이 조각

 

 

처녀가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 열심히 공부한 끝에 사중(寺中)으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통도사 강백(講伯)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산내(山內) 전 대중이 모인 가운데 취임식이 큰절 감로당(甘露堂)에서 베풀어졌다.

 

 

 

 

연회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한바탕 거센 바람이 일면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 하고 잡채만 한 호랑이가 감로당 지붕을 이리저리 뛰어넘으면서 어흥, 어흥하고 울부짖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갈수록 호랑이는 점점 사납게 울부짖었다.

 

대중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변일세. 필경 대중 속에 누군가가 저 호랑이와 무슨 사연이 있을 걸세.”

그렇다면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져보세. 그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이 아닌가.”

 

대중의 의논이 그렇게 돌아가자, 스님들은 저고리를 벗어 하나씩 밖으로 던졌다. 호랑이는 하나씩 받아서는 그냥 옆으로 던졌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호랑이가 새로 취임하는 강백 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마구 갈기갈기 찢으면서 더욱더 사납게 울부짖었다.

 

통도사 대중들은 강백이 바로 호랑이가 노리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상대방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였다. 강백 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는 아무래도 소승의 속세 인연인가 봅니다.”

말을 마친 스님은 합장한 채 바깥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는데 아무도 스님을 말리지 못했다.

 

 

 

 

호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강백을 낚아채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튿날 날이 밝자 산중의 모든 대중은 강백을 찾아온 산을 헤맸다.

깊은 골짜기마다 다 뒤졌으나 보이지 않던 강백 스님은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등성이에 맨몸으로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었다.

 

강백 스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님의 음경(陰莖)이 보이지 않았다.

오호라, 슬픈지고! 원한을 가진 채 호랑이로 태어난 처녀는 살아생전 흠모하던 스님과 그렇게라도 연을 맺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에도 잘 생기고 학식이 뛰어난 강사(講師) 스님만 노리는 호랑이의 횡포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통도사 대중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어느 날, 한 고승이 말했다.

영축산은 호랑이의 기운이 넘쳐나는 곳이니 호랑이의 혈을 눌러야 한다.’

고승은 피를 바른 큼직한 붉은 반석 2개를 도량에 놓게 하였다.

 

 

호혈석

 

그러자 그 뒤부터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가져다 놓은 반석이 호혈석(虎血石)이다.

호석(虎石)이라고도 부르는데 지금도 산신각(山神閣)에서 20m 남쪽에 있는 응진전(應眞殿) 바로 옆과 극락전(極樂殿) 옆 북쪽에 그 일부가 남아있다.

 

 

 

 

링크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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